나의 이웃은 누구인가? 


글: 김수억 간사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나온다.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던 중 강도를 만나 거반 죽게 되었는데, 그것을 본 제사장과 레위인은 피해서 갔고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자를 위기가운데에서 도와주었다는 이야기다.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누가 내 이웃입니까?'라고 묻는 율법 교사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주어진 비유다. 예수님은 이 비유의 마지막에 율법교사에게 질문한다.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누구이겠냐?'고 말이다. 정답은 누가봐도 '사마리아인'이다. 율법 교사도 그렇게 답한다. 예수님은 '누가 내 이웃입니까?' 묻는 율법교사에게 '너도 이와 같이 하라'라고 말함으로서 '네가 강도만난 자와 같이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이웃이 되어 주어라'라고 답하신 것이다. 


우리는 '선'을 명확하게 그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가능하면 덜 부담스러운게 좋지만, 부담을 지어야 한다면 어디까지 져야 하는 것인지를 명확하게 해주는 것을 좋아한다. 부하직원을 힘들게 하는 상사의 태도 중에 하나는 '선'을 명확하게 해주지 않는 것이다. 내가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 명확하게 해주면 내가 해야할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다하고,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나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명확하지 않으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그렇게 되면 책임감이 강한 사람은 매우 불편해진다. 

물론 조직사회에서는 이것이 선명할 필요가 있다. 분업화된 현대사회에서 이것을 제대로 정해주지 않으면 작업은 혼란이 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 경험상 이런 것을 가장 체계적으로 했던 단체는 역시 '군대'였다. '개인임무카드'까지 달달 외움으로서 나의 일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했다. 


누가 내 이웃입니까?


율법교사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향해서 묻고 싶은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어디까지 사랑하며 어디까지 섬겨야 하느냐의 문제다. 이것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로, 살아하고 섬겨야 하는 것은 알겠는데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프리카 오지 혹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종족의 아무개까지 사랑하고 섬겨야 한다는 것은 사실 너무 공허하기 때문이다. 구체화 시켜줄 필요가 있다. 그래냐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디까지가 내 이웃인지를 정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함정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내 이웃'의 한계를 정하는 순간 그 너머에 있는 사람이 '남'이 된다는 것을 애써 외면한다. 이웃이 섬김과 사랑의 대상이라면, 그 너머에 있는 남은 섬기지 않아도 될 사람이 되며, 사랑하지 않아도 책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내 이웃의 경계를 알려달라고 하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대상'을 알려달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의 가장 가까운 이웃은 제사장이나 레위인이다. 당연히 주변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웃이 아닌 대상은 누군가? 그것은 보나마다 사마리아인이다.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에게는 이웃으로 져야 할 책임을 가질 필요가 없는 대상이다. 사마리아인이 강도를 만나든, 병에 걸려 고통을 당하든, 직장을 잃고 생계의 문제에 직면에 있든 이들이 이웃이 아닌이상 '하나님의 율법'이라는 기준을 가지고도 이들은 아무런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웃이 아닌 이상, 책임에서 자유로워진다. 


너는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되어 주어라.


예수님의 이 말씀,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는 말씀은 애써 힘들게 만들어왔던 유대인들의 벽을 모두 허물어 버린다. 내 입장에서 내가 허용할 수 있는 이웃의 울타리를 허물어 버리고, 지금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모두 '바로 너의 이웃'이라고 말씀해 버리시는 것이다. 도와야 할 대상의 누구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나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냐?라는 질문을 바뀌면서 우리가 세워 놓았던 모든 이웃의 기준은 무너진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어 버리셨다. 마치, 선을 명확하게 해주지 않는 직장 상사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우리가 책임져야 할 일과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일을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모든 일이 나의 책임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나와 상관없는 해고 노동자의 문제에 엮기게 될 수 있고, 지하 단칸방에서 외롭게 목숨을 끊어야 했던 세 모녀와 같은 사람들과도 무관하지 않는 관계가 되고 말았다.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 속에서 잉여의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젊은이들의 고통은 우리의 고통이 되고 만다....


예수님은 '선'을 흩트러 버리시면서 우리 성도의 삶을 불편하게 만들어 버리셨다. 


작은 자 한 사람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요, 작은 자 한 사람에게 하지 않은 것이 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더욱 불편하게 만든다. 작은 자란 누군가? 우리가 이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자를 말한다. 이웃이라고 인정하고 싶은 않은 사람들, 엮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 그들이 바로 작은 자들이다. 


이제 우리의 선택만이 남았다. 손과 발의 움직임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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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강의 즐거움


글: 심연수 전 간사


미국생활 중 누리는 혜택 중 가장 큰 것을 말하라면 주저않고 청강의 특권을 꼽겠다. 수업 참여 뿐 아니라 학교의 학풍, 학생들의 분위기, 캠퍼스 문화 등등 타국 대학 생활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릇파릇한 20대 초반의 외국 학생들과 같은 공간에서 앉아 교감하는 것은 큰 매력이다. 물론 주위를 보면 언어에 대한 두려움으로 청강을 주저하거나 출산, 육아와 같은 현실적 이유로 이를 경험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지만 미국 대학의 경우 세미나 수업이 아니라면 청강생에게 크게 신경쓰지도 않을 뿐더러(가끔씩 나에게도 질문을 던지는 지나치게 친절한 교수들도 있지만…) 교실에 드문드문 앉아 있는 (교수로 보이는) 아줌마, 할아버지들도 종종 볼 수 있다. 과목 교수에게 승인을 받고 간소한 행정적 절차를 거친 후 교실 한 구석에 가만히 앉아 한시간을 보내고 있자면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 알아듣지 못하면 어떤가? 내가 또 언제 이 학교 강의실에 앉아서 학부생들과 함께 이 주옥같은 강의를 듣겠느냔 말이다. 나이를 중시하는 한국이라면 더더욱 부끄러웠을 일이다. 





학기 초반에는  2주간 동안  shopping period라고 불리는, 우리 말로 하자면 수강신청 정정 기간이 주어진다. 이 기간 동안 학생들은 본인이 듣고 싶은 강의를 골라다니는데 그야말로 ‘쇼핑’ 분위기다. 교수들은 자신의 수업에 찾아온 고객님(?)들을 대상으로 한 학기 동안 자신이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담은 프레젠테이션을 정성껏 선보이는데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내용이 아니거나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싶으면 중간에 거침없이 자리를 박차고 강의실을 나간다. (내가 들었던 수업 중 하나는 초반 30분 동안 무려 6~7명의 학생이 자리를 떴다.) 이렇게 우르르 나가는 상황이면 선생이나 학생이나 둘 중 한 편은 안절부절 할 법도 한데 불안해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수업료를 내는 학생은 자신이 원하는 수업을 선택할 권리가 있고 그들을 가르치는 강사는 학생들의 흥미와 지적 욕구를 자극할 만한 컨텐츠를 제공할 책임이 있다는 전제에 동의하기에 가능한 현상이다.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학생들이 모여서 더 이렇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학교마다 경미한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으나 기본적인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수강 신청 기간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학기가 시작된다. 지난 학기에 나는 학부 수업 두 과목을 청강했다. 하나는 중국전통 사상에 관한 것으로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역사, 문학, 철학을 전반적으로 다루는 개론이었고, 다른 하나는 동아시아 미술사 수업으로 한국, 중국, 일본의 불교미술을 폭넓게 다루는 수업이었다. 두 수업 모두 학생수가10명이 채 되지 않는 조촐한 분위기여서 학생들의참여도도 높고 학생과 교수 상호 간의 반응도 매우 활발한 편이었다.


인상적인 점 몇 가지를 꼽아보자면 먼저 co-teaching을 들 수 있겠다. 한 강의에 두 명의 교수가 함께 협업하여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내가 들었던 수업도 그 중 하나였다. 교수 두 명이 60분의 시간을 20분-30분-10분으로 쪼개어서 진행한다. (더구나 이 수업은 학생 수가 8명이었는데!) 같은 과목 내에서도 세부전공이 다른 두 교수가 수업을 함께 진행하면 많은 내용을 보다 심층적으로 다룰 수 있고 서로의 수업 내용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업은 학생-교수 간의 질의응답 뿐 아니라 교수-교수 간의 질문과 토론, 그리고 보완설명으로 에너지가 넘친다. 한 사람이 설명하다가 잘 모르면 다른 교수에게 추가설명을 부탁하고 내용이 다르거나 틀린 것이 있다면 서로 정정을 하기도 한다. 교수의 권위와 체면을 중요시 하는 우리 문화와는 많이 다른 점이다. 누구나 끼어들 수 있고, 누구나 수업에 자신의 말을 입힐 수 있다. 수업을 하는 목표는 분명하다. 이 시간을 통해서 학생들은 교수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전수 받는 것이 아니라 연구하는 이로서 소통하는 방식, 학문을 대하는 방식을 익히게 된다. 표현에 제한이 없고 권위자의 체면이나 동료들의 반응을 신경쓰면서 예의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지 않으려 애쓸 필요도 없다.  많이 아는 것 보다 앎을 풍성하게 나누고 다른 이들의 생각을 듣고 주고 받으며 조율해 하는 가치를 배우는 것 같다. 


해석서를 보지 않고 원전을 먼저 보는 것 역시 인상적이었다. 해석이 곁들여지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자료(고전책과 미술작품을 모두 포험하여)를 정답에 대한 두려움 없이 보고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대로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는데 꽤 자유로운 분위기다. 매 시간마다 중국 고전 소설이나 문학작품을 읽고 와야 하는데 일단 내용이 어렵고 서양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동양의 다소 황당한 신화들이 많으니 나는 먼저 글의 ‘의미’와 ‘목적’을 파악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전과와 해설서가 중심이 된 교육을 받고 자라다보니 글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향휴하는 과정에 여전히 어색하고 정답을 빨리 유출해야겠다는 조급함은 우리들에게 큰 숙제로 남아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학생들은 고전을 보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뭐든지 분명하고 확실한 결론을 내도록 훈련받은 우리들은 모호함을 모호함으로 받아들이고 즐기는 연습이 부족해서 신화처럼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장르를 어려워한다. 반면 교실 분위기는 책 속 작은 그림들에 자신만의 색깔을 입히고 상상하는데 경쟁적일만큼 적극적이었다. 잘 들어보면 “저게 뭐야?”랄 법한 이야기들도 많이 나오는데 일단 서로 경청을 하고 반응하고 반박한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것이 교수의 역할이다. 물론 부작용은 있다. 한국 유학생의 말에 의하면 많은 책을 읽어도 결국 제대로 된 의미를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그 어떤 어려운 책을 받아들어도 먼저 해설서나 주석을 집어들지 않고 스스로 읽어내려는 시도를 하도록 길들여진다는 것은 나에게는 매우 중요하게 다가왔다. 


물론 나의 경험이 일반적이며 미국 전체를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다. 철저한 자본주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는 이 곳 대학 역시 취업에 대한 부담을 많이 안고 있고 많은 부분에서 효율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변화되어 운영될 것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 상아탑을 지탱해 온 정신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고 내가 경험한 것은 아마 그 일부일 것이다. 한국 대학에 대한 아쉬움은 이와 같은 정신성의 상실, 혹은 부재다. 그러는 한편 문득 들었던 생각은 대학 때 받았던 훈련 중 성경을 읽고 사유하는 방식이 가장 여기에 흡사하다는 것이다. 구약은 고전 중에 고전이다. 계시록은 신화 못지 않게 난해하다. 설교집과 주석서를 미뤄두고 성경 그 자체를 두고 씨름했던 기억과 다른 학업에 비해서 정답 도출의 스트레스가 적었기에 마음껏 내 느낌을 표현할 수 있었던 점, 그리고 고만고만한 친구들과의 토론, 간사님과 목사님은 학점을 주는 사람들은 아니니까 정답만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받았던 교육 중에 가장 교육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쩌면 기독청년 공동체가 이런 면에서도 유일한 보루로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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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심연수 동문


죠이선교회에서 간사를 역임하고 사임 후 운동장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대학원에서 동아시아학을 공부하다가 미생물학 박사후과정(포닥) 중인 남편(염진기)과 작년 3월 미국 뉴헤이븐에서 거주 중. 동서양 사상의 만남에 관심이 많아서 미국에서 뭐라도 얻어보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desperate wife로 살고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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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 

_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말이 안되면 마음으로….


글: 안순건 형제(아프리카 콩고에서 근무)


지금으로부터 10년전인 2004년 선교한국 주제가 “벽을 넘어 열방으로”라는 구호였다. 그 때 넘어야 할 많은 벽들 중에 선교지에게서 가장 먼저 넘어야 할 벽이 언어의 벽이었다고 선교사님들이 많이 강조했던 것이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지금 콩고에서의 생활을 생각해보면 언어의 벽은 정말 넘기 힘든 벽이고 아직도 내가 넘어야 할 벽임은 분명하다. 의사소통 없이 어떻게 업무가 진행되겠는가? 직장생활을 해 보더라도 젊은 사람들은 1-2년정도 현지인들과 부딪히며 금방 적응해 나가지만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아무래도 현지인들과 언어소통의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계신다.


우리 회사에도 연세가 지긋하신 한국 공장장분이 계시는데 이 분이 언어의 벽을 넘겼던 노우하우를 하나 나누고 싶다. 나와 입사 년도가 같은 우리 공장장님은 기술자 출신으로 30년을 한 길을 걸으신 그야말로 토종 한국 기술자 출신이신데 타 문화권 그것도 아프리카 콩고에 처음 오셔서 현지인들과 언어소통이 안 되는 것은 당연했다. 이 분의 특징은 우선 한국말로 현지인에게 얘기하시고 현지인이 이 말을 못 알아 들으면 답답해 하셨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수염을 깎은 현지직원이 공장장님께 인사를 했더니 공장장님은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면서 “수염 아주 시원하게 잘 깎았다.” 하시면서 아주 흡족해 하셨다. 그런데 3달뒤에 이 직원이 수염을 예전처럼 덥수룩하게 길러와서는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면서 “저번에 수염 길렀던 게 멋있다고 하셨죠? 그래서 계속 길렀어요.” 이 직원은 3개월동안 공장장님한테 잘 보이려고 수염을 길러 온 것이다. 


이를 비롯하여 바벨탑의 저주처럼 언어의 소통이 안되니 모든 일이 하나같이 느려서 답답했다. 올리라고 하면 내리고 끊으라고 하면 연결하고 그야말로 바벨탑 사건이 매일 일어났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도 없는 법… 이 콩고처럼 후진국 현지인들의 특징 중에 좋은 점이 있다면 우리 같은 외국인들의 말이 아주 바보스럽더라도 그 말을 정말 경청해 주고 외국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간단히 내가 아는 단어 말 몇 마디로 어눌하게 말 하더라도 현지인들과 정이 들면 현지인들은 우리가 몇 단어로만 얘기하더라도 알아서 다 이해해 버린다. 따라서 프랑스어를 조금만 공부하다보면 더 늘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아는 몇마디에 갇혀 버리게 되는 것이다. 소위 말해 황제 프랑스어를 하게 된다.


하지만 선진국에서 우리 같은 아시아 사람이 어눌하게 현지말을 하는 것을 상상해 보라. 선진국 사람들은 마치 우리를 한국에서 해외 노동자를 바라보는 우리 시선처럼 보는 그런 눈초리로 볼 것이다.


아무튼 우리 공장장님은 한 마디 한 마디 배우시더니 현지인들과 바디렝귀지를 비롯하여 몇 마디 안 되는 불어로 소통을 하시기 시작하셨다. 중요한 것은 앞서 말했듯이 현지인들과의 인간적인 정이 쌓이다 보면 콩고 현지인은 우리의 몇 마디 단어만 가지고도 우리의 말을 경청해 준다. 공장장님은 애정을 가지고 현지인들에게 기술을 가르쳤고 모든 현지인들의 집에 가정 방문을 했으며 현지직원들의 사소한 요청과 부탁도 거절하지 않으셨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지내다 보니 정말 몇 마디 안 되는 불어 단어만 가지고서도 의사소통이 가능했고 심지어 현지직원들이 한국말을 하는 놀라운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가끔 현장에 들어가보면 현지직원들이 “올려, 들어와, 내려, 두 개 가져와, 빨리빨리”와 같은 한국어를 구사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어찌 놀랍지 않을 수 있는가?


우리 회사에 한국직원 밥을 해주는 일하는 콩고 아줌마가 있는데 이 아줌마는 우리 공장장님과 직통 직해로 의사소통을 한다. 예를 들면,



공장장(한국말) : 마와(콩고아줌마이름) !!! 계란을 찜으로 하라고 했는데 왜 후라이를 했니?

마와(프랑스어) : 어제 당신이 후라이 하라그래서 후라이 했는데 왜 이제와서 딴소리에요?



공장장(한국말) : 내 방 방키줘(열쇠).

마와(프랑스어) : (열쇠를 건네며) 여기 키줘 있어요 (키줘를 열쇄로 인식하고 있다.)



마치 영화 러브 엑추얼리의 장면처럼 영국 작가가 남미 가정부와 함께 한 쪽은 영어로 얘기하고 한 쪽은 스페인어로 답하는… 하지만 말이 서로 맞는 씬을 나는 매일 이들의 대화를 통해서 보고 있다.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꽹가리가 되고”(고전 13장 1절)


2004년 선교한국이 지난 10년 후인 2014년 지금 이 곳 콩고에서 생각하는 언어의 벽을 넘는 방법은 열심히 공부할 수도 있겠고 현지문화를 몸으로 많이 부딪혀보는 등의 여러가지 방법들이 많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현지인들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우선이 되어야겠다. 조금의 관심과 사랑으로도 현지인들은 금방 마음을 열고 우리의 말을 경청하려는 그런 모습들을 볼 때마다 프랑스어 단어 한 두 개 더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들을 향한 사랑과 진심 그 언어의 벽을 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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